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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나

엘리스 닐과 남자누드 모델-1(성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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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닐의 전시가 있던 위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한 방에는 이 남자누드 작품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그냥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지적인 미국사람들이 이 그림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동행자들과 아무렇지 않게 흔연한 모습으로 대화도 하면서 미소를 짓고 서있는 것이었다.



Daily News를 보던 중에 Alice Neel이라는 화가의 100주년 Birthday Anniversary Exhibition이 Manhattan에 있는 Whitney Museum에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붓의 텃치가 얼마나 강렬한지 화가가 여성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었다. 그녀의 그림을 보러 한번 외출하기에도 힘든 맨해튼을 연속 세 번이나 토요일에 다녀왔다. Modern Art에 이어  Metropolitan Museum은 미국이 자랑할 만한 Museum이다. 그동안 여러 책방에서 수집한 책속에 있는 그림들을 진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Whitney Museum에서 지금 전시중인 Alice Neel의 Portrait은 내게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 지를 보여준 전시였다. 1900년에 태어난 그녀의 작품은 60년 70년에 전성기를 이룬다. 한 가정의 엄마로서 병행하던 작품세계에 이어 그녀가 진정한 화가로 독립할때까지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성기가 세 개 있는 남성을 그렸다. 두 번째 방문 했을 때 Free Alice Neel Tour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림을 일일이 소개하던 Instructor는 관객들에게 그녀가 그 당시 남성을 느낀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항상 불만스런 것은 40이 되어가는 이 나이에도 아무 성과도 없는 내 자신의 그림 수준에 가끔씩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 그녀의 전시회는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60, 70년에 그린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값진가? 그 전시회가 더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직접 임산부 누드모델을 그리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준 것이다. 첫 방문 때에도 반복해서 그녀의 작품을 둘러 보았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Tour를 통해서 또 다른 경험을 했다. 관람 시간이 끝나는 6시까지 Full로 관람 하는 열정을 가졌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이 값진 것이었다. TV토크 쑈에 여러번 참석해서 그녀의 주관을 펴기도 했다고도 한다. 그러고 생각하니 그녀의 책 뒷편에 그녀가 TV쑈에 출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일요일 나의 딸을 모델로 시도해 보았다. 붓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색채 섞기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진정한 그림이란 무엇일까?

-2000년 어느 여름날, 위트니 뮤지엄을 다녀와서-






2000년 그 여름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나의 아트에 관한 관점을 전환시킨 미국의 여류화가 엘리스 닐을 거기서 만난 것이다. 그 곳에서는 엘리스 닐의 탄생 100주년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1900년에 태어났다. 솔직히 그 전까지 나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아트를 단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찾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성(sex)에 관한 잠재의식과 이런 내면 속의 감정을 어떻게 아트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표현할 수 없는 생각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아니 심지어 동물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고 아티스트라면 이것을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다 표현하다 미쳐서 던지고 뿌리고 발광을 하는 아티스들도 있다. 그러한 충격적인 표현이 아닌 잔잔한 물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은 아티스트들이 갖는 또 하나의 바램이다. 섹스를 한 뒤에 충만해지는 감정을 그리고 달콤한 키스와 애무 등이 온 몸으로 느껴질 때의 감정과 오르가즘이 불타는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고 난 뒤의 잔잔해진 파도를...  폭발해 버리고 난 뒤, 기진 맥진이 되어 있는 순간을 말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며 서로 부둥켜 앉고 있는 감정들까지 말이다. 이 모든 순간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벗은 몸은 솔직하다. 특히 섹스 뒤에 오는 진한 감정은 풍선을 불었다가 바람이 빠진 상태에서 오는 충만한 감정이다. 사정을 한 남자와 활활 타오르던 불꽃(오르가즘) 뒤에 푹 꺼진 모닥불 불에 불을 쬐는  여인에게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 개스는 다 빠지고 빈 몸만 댕그라니 남아 있다. 얼마나 편안한 상태인가? 둘 다에게 이보다 편안한 상태는 없다.

우리가 고급스럽게 가치를 인정하는 아트의 저변에는 거의 이런 저질스러운 생각들이  깔려 있다. 고상한 것들을 내걸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아티스트는 없다. 기본적인 삶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아티스트들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아티스트들의 이런 생각을 컬렉터들이 이미 간파하고 있다. 이런 것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물질과 정신의 갭을 메꾸는 양분으로 아트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고리는 또한 아트가 발전 되어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엘리스닐의 이 남자누드는 이런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모델을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그린 그림의 특징은 보이는 현상(외면)을 그리면서도 그녀가 느끼는 감정(내면)까지 표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벌거벗고 있는 남자모델의 심리적 상태를 추측해 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당신이 발가벗고 모델이 된다면 저런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남자 모델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으면 일반적으로 건강한 남자를 더 남자답게 표현한다. 전통적으로 그래왔다. 어떤 남자도 저런 나약한 모습으로 자신이 표현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비례가 맞지도 않으면서 실제보다 외소한 몸에 김 빠진 자신의 성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그러나 나는 이 그림이 비례가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정신적인 비례는 이보다 더 맞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표현하고 싶은 인간적인 남자는 바로 이런 남자였던 것이다. 강한 남자에 대한 반발이다. 이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고 그녀가 내 귀에다 대고 "그렇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들은 더이상 강한 남자를 원치 않는다.  자상하고 여자스럽기까지한 인간적인 남자를 요구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8X63 inches

여기 위 그림의 누드모델 John Perreault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1972년 작품이다. 이 실물과 위의 모델을 동일인으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것에도 한번 더 놀랐다. 이런 식으로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을 서로 이해하는 환경에서 아트가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John Perreault: My version of this story, and of course it's the accurate one, is that I had, a few year earlier, done a favorable review of Alice's work in ArtNews, I must have met her at an opening or something. By the mid-seventies I was working on my first exhibition as a curator. It was for the School of Visual Arts gallery, where I was teaching, and it was The Male Nude. I thought "Well, I'll invite Lowell Nesbitt, Philip Pearlstein, Alice and a few other people." And the one that I wanted from Alice was her portrait of Joe Gould, the great bohemian of the twenties. He had three penises. I thought that would be perfect. So I called her up and want to see her. And we were chatting. She seemed very reluctant. She pulled it out of her storage, and then she started looking at me with her brilliant, mischievous eyes and asked me, "Who else is going to be in this show?" I gave her the list, and she said, "Philip's going to be in the show? I bet he's doing a new painting, not something from the thirties." So she said, "I have an idea. I'm going to paint you naked for this show. That's the couch, go sit on the couch, go lay back on the couch." And she took a piece of chalk and chalked my position. Then I came back the next week, around lunchtime, and this was the beginning of, I think, fourteen sessions. They started around noon, in her cluttered kitchen, usually with crackers and cheese, and then we went into the parlor painting room, which overlooked Broadway. It had a big philodenrom, sunlight coming in, and there weren't any blinds on the window. I felt a little strange, but it was the seventies. I looked at the painting to see how she was proceeding, which didn't seem to be a problem for her. The first go at it, she didn't like the positioning on the canvas and gave it up. The second time she got this position, and she outlined it in blue, or probably brown, paint. She drew on the canvas with the paint. And we talked incessantly through it. It was very illuminating because I got her version not only of her life but of everyone else's. I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WPA period. My father, although not a member, had had a flirtation with the Communist party, and I had an uncle was a member of the Communist party, so we had a lot to chat about. And while we were talking, she was painting away, busily. She saved the genital area for last, and in fact that was the end of the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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